전부는 고려시대까지도 화폐가 제대로 쓰이지 않을 정도로 유통산업의 발전이 더뎠다. 조선시대에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해서 상업을 낮게 테스트했다. 국내외 유통사업이 2017년 기준 137조1139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7.2%를 차지하며 전체 취업자의 15%를 고용할 정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짧은 시간 선진 제도의 도입과 혁신을 거듭한 덕분이다.
전국 최대 덩치 4일장으로 알려진 경기 성남시 모란장 모습. 끝자리 4와 9가 들어간 날이면 주차장 부지 8만7000㎡에 각종 간이점포가 설치한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에 상설시장이 생긴 것은 조선 개국 때로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숭례문(남대문) 목화솜틀집 주변에 ‘시전행랑(市廛行廊)을 설치하면서부터다. ‘팔지 않는 제품이 없다는 남대문시장의 시행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육의전으로 대표되는 시전상인에게만 아을템을 팔 수 있는 권리(금난전권)를 부여하는 등 유통을 억제하는 정책을 썼다. 18세기 후반 정조 때 육의전을 제외한 모든 시전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하면서 자유로운 상업 활동이 허용되고 1896년 남대문시장이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으로 거듭났지만, 여전히 1일장과 보부상이 전국의 유통을 담당했었다. 쌀장사와 종이 매출으로 큰비용을 번 박흥식이 1934년 부산 공평동에 세운 화신백화점은 한국 첫 백화점으로 일제시대 일본 상인들이 장악한 해외 유통사업에서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켰다. 박흥식은 화신연쇄점을 모집해 전국에 380개의 가맹점을 두는 등 프랜차이즈 산업을 도입한 인물로도 테스트된다. 연쇄점은 똑같은 종류의 상품을 파는 점포를 다체로운 지역에 개설해 유통자본을 낮춘 산업모델이다.
